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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컬럼
제목 기독교인의 공적인 책임 하나님의 섭리 이 한 해를 사랑하며 사세요.

기독교인의 공적인 책임

 

“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 엡 5 : 8 )

 

이 사회에 기독교가 존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교회가 5만 개가 되고, 교인이 천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 것이 이 사회에 대해 무슨 의미가 있는냐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면 마치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세상이 너무나 악해 졌습니다. 죄의식이 실종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죄를 짓고도 ‘ 나만 재수 없어 걸렸다 ’는 생각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 도대체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너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왜 이 모양이니 ” 하는 주님의 책망이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변명할 지 모릅니다. “ 주님, 세상은 원래 악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기를 쓴다고 세상이 천국으로 바뀌겠습니까? 가룟 유다가 성자로 바뀌겠습니까? 그저 우리만 예수 잘 믿고 천국 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냉정히 비추어 보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 세상의 빛 ’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빛이라는 뜻은 이 사회의 부패나 타락에 대해서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 ’는 식의 변명은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교회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빛으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기독교는 개인적인 종교로서의 역할과 공적인 종교로서의 역할을 균형 있게 잘 감당해야 합니다. 어느 한 쪽으로만 치우쳐버리면 그것은 참 기독교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나 하나만 구원 받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구원받고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실속만 차리는 자들은 기독교를 개인화시켜 버립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는 것은 단지 자기감정을 만족시키고 자기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는 신앙생활을 썩 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공적인 책임을 가진 종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공적인 책임이란 정의를 외치고 약한 자와 억눌린 자 편에 서서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데 앞장서는 것을 말합니다. 사회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면 교회가 그 환부를 끌어안고 치유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감당해야 할 공적인 책임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공적인 책임을 도외시한 채 자기만을 위한 종교에 몰두해 있는지 모릅니다. 기독교가 사회를 거룩하게 만들고,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는 공적인 책임을 다하게 되면 교회의 피가 깨끗해지고, 결과적으로 사회까지 건강하게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개인적인 면과 공적인 면,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책임을 제일 먼저 깨닫고 실천에 옮긴 선각자들이 바로 종교개혁자들이었습니다. 당시는 신성 로마제국 시대입니다. 기독교가 그 사회를 주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굉장히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습니다. 뇌물을 받고 성직을 팔아먹지를 않나, 돈을 받고 죄 용서를 보증하는 면죄부를 팔지 않나요? 거룩한 삶을 자랑하는 성직자들이 타락하지 않나? 세상에서 가장 부패해서 악취가 나는 곳이 바로 교회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나 신앙생활을 바로 해 보겠다는 거룩한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을 등지고 수도원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받았습니다. “ 이 더럽고 신물나는 세상, 안보는 것이 상책이니 수도원에나 들어가서 그 속에서 살다가 죽자 ” 그래서 수많은 신실한 사람들이 수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세상과 담을 높이 쌓고 그 곳에서 밭이나 갈고 채소나 재배하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당시의 풍조였습니다.

 

이런 풍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토마스 아 캠피스의 ‘ 그리도를 본받아 ’ 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거룩하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지침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밑바닥에는 잘못된 사상이 하나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긍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해 부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거룩하게 살고자 한다면 세상을 버리고 돌아서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루터나 칼빈, 쯔빙글리와 같은 종교 개혁자들은 바로 이러한 잘못된 신학을 부정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들은 부패한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앞장섰을 뿐아니라, 수도원 운동들에 의해 무시되었던 교회의 공적인 책임을 다시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받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 남겨 놓으신 것은 타락하고 냄새 나는 이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여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로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도피해서도 안 되고, 세상에 등을 돌려서도 안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더러워도 우리는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개인의 구원을 위한 종교이면서 동시에 이 세상을 위한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이러한 위대한 종교 개혁자들의 사상을 이어 받았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기독교가 개인의 전용물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 만유의 주 ’요, ‘ 온 세상의 구주 ’가 아니라 ‘ 나의 구주 ’로 소인화되어 버렸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더욱더 무기력해졌고, 이 사회에 대해서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는 비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교회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는데도 세상은 더 악해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만큼 많이 들어가서 일하는 회사라면 뭔가 달라도 다를 것 같은데 피장파장입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그 동안 공적인 책임을 너무나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행해야 합니다. 여기서 ‘ 행하다 ’는 말은 걸어 다닌다. 실천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답게 사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빛의 자녀다운 삶입니까? “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 그렇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착하고 의로우며 진실합니다.

착하다는 말은 우리의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살기 때문에 우리의 거듭난 마음은 착해집니다. 의롭다는 말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항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려고 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진실하다는 말은 이웃을 향한 나의 자세를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정직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양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나만을 위한 종교로 사유화시킴으로써 교회가 공적으로 이 사회와 국가를 위하여 담당해야 할 책임을 등한히 해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과 삶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생긴 것입니다. 정직해야 될 사람이 직장에서 거짓말을 함부로 합니다. 선해야 할 사람이 세상 사람과 똑같이 더러운 생각을 품으로 행동합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게 행동해야 할 사람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 이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11절에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악한 사람들과 손잡고 그들의 일에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나 이 정도 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책망해야 합니다. 책망한다는 말은 들추어내고 폭로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곳에 있음으로 주변의 어둠의 일들이 폭로되게 해야 합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런 역할을 합니다.

꿩의 비름
조회:100
2012-02-11 20:37:37
덧글 2개
하나님의 섭리 이 한 해를 사랑하며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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